경주자로 부름받은 성도는 얽매이기 쉬운 모든 무거운 것을 내려놓고, 십자가의 극심한 고통과 조롱을 인내하신 예수님께 시선을 고정해야 합니다. 우리가 겪는 고난은 참된 자녀를 거룩하게 빚어가시는 사랑의 훈련 코스이자 하나님의 징계입니다. 당장에는 괴롭고 아픈 수술의 고통 같지만, 피하지 않고 인내할 때 비로소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설교자는 지난 권면들을 되짚으며, 거룩함과 화평을 추구하는 성도들이 최종적으로 도착할 곳이 두려움의 산이 아닌 은혜의 ‘시온 산’, 즉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임을 선포하며 청중의 시선을 영원한 하나님 나라로 이끕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영적 여정의 두 산을 극명하게 대조합니다. 과거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탈출하여 도달했던 시내산은 타오르듯 검붉은 구름과 불이 산 정상을 덮은 두려움의 장소였습니다. 어느 경계를 넘어서면 그 자리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위험한 거룩의 현장이었으며, 오직 짐승의 피로 맺은 옛 언약이 주어졌던 곳입니다. 그러나 경주자로 부름받은 우리가 도달한 곳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직접 흘리신 피로 찢어놓으신 휘장을 지나 도달하는 시온 산입니다. 이곳은 천만 천사와 하늘에 등록된 장자들의 모임, 즉 ‘에클레시아(교회)’가 영광스러운 축하 행사를 벌이는 은혜의 자리입니다. 시내산의 옛 언약이 동물의 피로 맺어졌다면, 시온 산의 새 언약은 예수의 피로 맺은 영원한 언약입니다. 아벨의 피가 억울함을 호소하며 철저한 복수와 심판을 요구했던 부르짖음이었다면, 예수의 피는 우리를 향한 맹렬한 심판을 멈추게 하고 완벽한 용서와 은혜를 선포하는 샬롬의 보혈입니다.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이 로마의 극심한 핍박 속에서 생존을 위해 과거의 율법과 시내산으로 돌아가려 했던 것은, 이 고귀한 예수의 피와 찢기신 휘장을 값싼 것으로 전락시키는 비극적인 행위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흔들리지 않는 터 위에 세워지지 않은 모든 것은 결국 소멸하는 불의 심판을 피할 수 없음을 히브리서는 엄중하게 경고합니다.
설교자는 이 영원한 나라를 향한 여정을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과 노아의 방주라는 탁월한 예화로 풀어냅니다.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기 위해 만주로 떠나 건국을 꿈꾸었던 사람들은 현실과 타협하며 일본의 백성으로 살았던 이들에게 미련한 자들로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보이지 않는 확실한 소망을 굳게 붙잡았습니다. 마찬가지로 노아가 1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산꼭대기에서 방주를 지었던 행위는 세상 사람들에게는 인생을 허비하는 조롱거리였지만, 실상은 세상을 향한 생명의 복음이자 하늘의 경고를 대언하는 순종의 삶이었습니다. 베드로가 무력으로 예수님을 지키려 칼을 빼 들었을 때 십자가의 고난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처럼, 우리는 당장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폭력과 세상의 방식에 기대어 타협하려는 유혹을 받습니다. 그러나 공동체 안에서 누군가 내 손을 꼭 잡고 침묵하며 여리고 성을 함께 돌자고 권면할 때, 비록 내 상식에 맞지 않더라도 묵묵히 견디며 따라나서는 것, 그것이 바로 영적인 배를 짓는 삶이자 말씀하시는 분을 거역하지 않는 신앙의 참모습입니다.
이러한 흔들리지 않는 샬롬의 나라를 소유한 성도들의 삶은 히브리서 13장에 이르러 구체적인 일상과 관계의 자리로 확장됩니다. 어수선하고 삭막한 시대 속에서 서로 사랑하기를 계속하며 은연중에 나그네를 대접하는 것은 우리가 진정한 샬롬의 상태에 있음을 증명하는 시금석입니다. 갇힌 자와 학대받는 자를 내 몸처럼 여기는 깊은 공감, 그리고 허물어져 가는 시대 속에서 혼인을 귀하게 여기고 성적인 결백을 지켜내는 윤리적 결단이 반드시 뒤따라야 합니다. 무엇보다 일만 악의 뿌리가 되는 돈을 사랑하는 마음을 철저히 경계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15장의 탕자가 돼지 사료조차 마음대로 먹지 못했던 비참함은, 돈이 최고의 가치가 되어버린 비정한 세상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빈부격차가 극심하고 돈의 안경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오늘날의 현실 속에서, 주님을 바라보는 시선을 잃어버리면 우리는 필연적으로 결핍에 갇혀 스스로를 끝없이 비하하게 됩니다. 우리가 가진 것에 진정으로 자족할 수 있는 유일한 비결은,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와 함께하시며 나를 도우시는 주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설교자는 우리 모두에게 ‘시편적 인간’이 될 것을 간절히 촉구합니다. "주님께서는 나를 도우시는 분이시니 내게는 두려움이 없다"는 히브리서의 고백은 시편 기자들의 숱한 간구이자, 두려움 속에서 하나님의 굳건한 약속을 붙잡는 성도의 호흡입니다. 하루 종일 들여다보는 스마트폰 사용 시간의 십 분의 일만이라도 말씀과 기도에 온전히 쏟아붓는다면, 우리는 이 땅에서부터 이미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미리 맛보는 놀라운 축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두 발은 비록 이 척박한 사회라는 땅을 딛고 살아갈지라도, 우리의 눈은 언제나 저 높은 하늘을 우러러보며 하늘 시민권자로서의 거룩한 정체성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매일의 치열한 삶의 한복판에서도 다시 고개를 들어 시온 산의 영광을 바라보는 굳건한 믿음의 습관이 우리 모두에게 온전히 형성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