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2편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우리가 그들의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는도다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 그 때에 분을 발하며 진노하사 그들을 놀라게 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네가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그런즉 군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세상의 재판관들아 너희는 교훈을 받을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
2편은 신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제왕시’라고 불리는 시편입니다. 의미는 하나님께서 왕이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개념이 들어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너희는 내 백성이 되고’라는 말씀에 기반한 내용입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다윗왕이 유명하고 모두 알고 있죠. 그리고 구약의 약속에는 다윗 계열의 왕이 우리를 다스린다고 말합니다. 그에 관한 내용은 사무엘하 7장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언약하셨다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우리는 약속을 잘 지켜려고 해도 어떤가요? 여기에서 하나님께서는 언약하신 내용을 이루시고 변치 않는다는 의미를 ‘신실하신 하나님’이라고 표현합니다. 시편은 특징적으로 의인과 악인이라는 두 그룹을 계속해 대조합니다. 의인은 의롭게 행한다는 의미에서 행위적인 면을 강조해 보이지만 시편은 오히려 어떠한 삶 속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며 1편에서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한다고 선언했습니다. 즉 토라의 삶을 사는 의미입니다. 반면 악인은 여호와를 인정하지 않고 의인을 이기려합니다. 그런 악인을 이기는 분이 하나님의 약속으로 다윗의 계열에서 오신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물론 완성된 성경에서 우리는 예수님을 신학적으로 발견하지만 시편 기자는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사는 삶에 그러한 미래적 소망을 매우 중요한 시각으로 보게 하는 것이죠.
예가 될 수 있을가요? 일제 강점기의 암울한 시대에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 없이 살기를 소망했던 윤동주 시인의 깊은 시심처럼 말입니다.
본문을 간단히 보면 1-3절은 이 땅의 왕들을 보면 헛된 일 죽 서로 속이고 꾀하여 하는 일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이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 나라와 대적하는 이방 나라들은 자기의 이익을 중심으로 헛된 일을 꾸미고 결국은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을 대적하게 됩니다. 시편은 이것을 악인의 길이라고 합니다.
4-6절은 우리하는 말에 ‘그러다 천벌받지’라는 것은 알게 모르게 천벌을 주는 분이 있음을 인정하듯 그래야 이 땅에서 억울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풀고 살 수 있듯이 정말로 하나님께서 계신다면 이러한 악인을 그냥 두시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한 것입니다. 7-9절은 이제 진정한 통치가 일어납니다. ‘내 아들’로 오시는 분이 통치하시는 놀라운 날이 온다는 것이죠. 그분이 오시면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깨뜨림이여’, ‘부스리라’, 그래서 의인은 지혜를 얻으며 교훈을 받아야 하는 것이죠. 이어지는 10-12절은 결론 적으로 ‘이 아들’에게 복종한다고 시편 기자는 고백합니다.
오늘 우리가 고백하고 믿는 예수님은 친구처럼 쉽게 부르며 만날 수 있는 분이라 말하지만 사실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시기에 합당하게 영광을 받으실 분이십니다. 따라서 신자는 예수님께 합당한 경배를 올려 드려야 하고 토라를 따라 사는 삶을 살아 내야 합니다. 아멘
ps. 금요일이 경민이 실기 시험이 있는 날입니다. 연습하고 준비한 것들이 잘 발현되도록 기도해주세요. / 부모님들의 건강과 계절이 바뀜으로 발생하는 소소한 일들을 위해서도 기도하고 저에게 주어진 교회 개척과 과정을 위해서도 기도해주세요. / 우리의 자녀들을 위해서도 올바른 길로 가도록 기도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