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4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5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6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시편1편은 의인과 악인의 길을 대조한다. 그리고 의인을 ‘복 있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시작하는 1장은 시편 전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서론이다.
복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며, 누가 복 있는가? 먼저 그렇지 않은 사람인 ‘악인’을 거론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2절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는 사람이다. 이는 ‘여호와’ 즉 하나님과 관계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나름대로 정의롭게 사는 ‘나는’ 악인인가?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과 관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본다면 이건 너무하다고 생각된다. 하나님이 없어도 잘 사는 사람, 하나님을 인정하면서도 여호와의 율법에 비춰 살지 않는 사람들이 그렇게 말할 수 있다. 이들은 세상에서 자기의 생각으로 자기의 기준으로 사는 것을 자랑한다. 시편 기자는 ‘꾀를 내어 사는 삶’이라고 정의하고 이들을 ‘죄인’, ‘오만한 자들’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각자는 내 말이 맞다고 주장하면 상대의 주장도 들어야 하는 ‘다양성’의 시대에 살고 있고 그럴 때 온전한 ‘옳음’을 비교할 ‘시금석’은 있는가? 라고 질문해야 한다.
성경은 시금석을 여호와의 율법이라고 말하고 주야로 율법을 묵상하며 마치 거울을 보듯 비춰보는 자가 복 있는 자라고 말한다. 우리 스스로가 각자의 기준으로 ‘난 이렇게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해’라고 말할 때 말 보다 여호와의 율법에 먼저 비춰보고 행동한다면 시편 기자는 진정한 의인의 길 다시 말해 율법을 따라 사는 길이라고 정의한다. 그래서 ‘여호와의 율법’ 인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삶은 여호화의 말씀으로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된다. 다른 성경 말씀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요한복음 십칠장 십칠절에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그리고 로마서 12장2절에는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는 말씀에서 여호와의 율법은 참으로 따를 진리이며 이 세대는 자기의 꾀를 따라 사는 세상임으로 본받아서는 안 되는 말씀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