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를 이해한다고 말한다면 존중은 하는 걸까?
이해는 상대를 헤아려보고 상대가 가진 사고를 받아들여 준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래서 집에 아이들을 보면 '이해가 안돼'라고 말한다.
그런데 서로 사고방식이 다른 이해는 과연 가능할까?
우리가 사는 세계는 참 다양하다.
말 그대로 생각하는 사고가 다양한 것이다. 그러니 그런 사고에서 나오는 방식이 다를 수밖에 없다.
이곳에서 갈등이 나온다.
물론 통일성을 위해선 룰과 규칙이 필요한데 이 또한 이해를 바탕으로 가능한 것이다.
막무가내는 바로 이 규칙을 각자의 방식으로 이해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오늘 그런 일이 있었다.
초등부에서 봉사하는 친구는 중등부고 난 중등부의 사역자다.
그 친구를 상담하는 중에 많이 힘들어한다.
그래서 사역자의 마음에 봉사하는 일을 좀 내려놓고 쉬게 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초등부 선생들에게 상황이 어떤지 물었더니
그렇게 일을 하고 있지 않아서 괜찮을 것 같다고 한다. 말 그대로 아이의 상황이 어떤지 물어 본 것이다.
그리고 담당 부장에게 요청을 했다.
아이를 좀 쉬게 해야할 필요가 있기에 그렇게 조치를 하고 싶다고 했다.
그랬더니 부장도 괜찮다고는 했지만 아이의 상황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할 수는 없었다.
아이가 상담한 것을 존중해야 했고 그러다보니 담당 부장에게 아이가 힘들어 한다는 정도만 말 할 수밖에 없었다.
부장은 혹시 초등부에서 봉사가 힘들어서 그런거 아니냐고 묻기에
분명하게 그런 건 아니고 중학생으로 여러 어려움이 있음을 설명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서야 그런 일처리가 마음에 안들며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면서 했던 말들을 꼬투리 삼아 조목조목을 따진다.
왜 선생님께 허락을 받고 자신이 부장인데 허락을 받지 않았는가 하는 것이 기분이 상했나보다.
물론 선생들에게 상황을 확인해 본 일이 부장 입장에서는 마음에 걸렸을 수도 있다.
자신에게 물어야 할 일을 선생들에게 물어본 일이 그렇다는 것이다.
나 역시 선생들에게 의견을 구하거나 동의를 구한 것이 아닌 상황이 어떻게 되는지를 교사의 시선이 필요했기 때문에 물어 본 것이다. 어쩌면 교사 입장에선 필요한 보조교사의 입장도 있을 것이고 나름 '종합적인 상황'을 확인하려 했던 것인데 부장은 조직의 일로 순서를 본 것이다.
교역자는 담임목사의 목회철학을 공유해야 한다.
지친 이들에게 쉼을 제공하고 먼저 휴식하도록 하는 일을 우선으로 여긴다.
그래서 힘들다고 하면 잘 지켜보고 상담을 하고 조치를 취한다.
그런데 그런 담임목사의 목회철학이 교인들에게 잘 흘러가지 않는다.
자신이 맡은 일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함께 가려면 늦게 가더라도 조직적인 일과 순서보다 힘들고 아파하는 영혼을 먼저 볼 눈이 필요하다.
난 그런 적이 없다.
누가 그렇게 하라고 했느냐.
왜 말이 다르냐.
그렇게 서로 따지면 결국 교역자가 질 수밖에 없는 것이 교회의 구조다.
그렇다고 자기의 방식이 맞다고 다 그렇게 한다고 말하는 이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잘못을 지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