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요약
끝없이 배신하며 영적 간음에 빠진 백성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고, 심판의 고통을 넘어서라도 기어이 온전하게 회복시키고야 마시는 하나님의 애타고 끈질긴 사랑, 즉 헤세드의 정의를 다시금 가슴에 새기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마음 깊은 곳에서 긍휼이 끓어오르는 충돌이 구원의 빛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로 이어진다는 사실은, 우리의 메마른 감정을 강하게 요동치게 만듭니다. 시편 기자의 고백처럼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이토록 돌보시는지 벅찬 감격을 경험하게 하는 이 배경 속에서, 호세아 선지자가 마주했던 북이스라엘의 참혹한 영적 현실은 오늘날 우리의 거울이 되어 깊은 찔림을 줍니다.
본문 12장 1절 '바람을 먹으며 동풍을 따라가고 종일토록 거짓과 포악을 더하여 앗수르와 계약을 맺고 기름을 애굽에 보내도다'라는 말씀에 집중해야 합니다. 호세아가 이스라엘의 멸망을 피 끓는 심정으로 경고하던 때는 역설적으로 물질적 번영과 군사적 전성기를 누리던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풍요의 이면에는 항상 약자를 착취하는 빈곤의 양극화와 불안을 달래기 위한 우상숭배가 독버섯처럼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무려 6명의 왕이 암살과 쿠데타로 교체되는 폭력의 시대 속에서, 그들은 민생을 돌보기보다 강대국 앗수르와 애굽 사이에서 눈치를 보며 줄타기를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깨닫기를 마냥 기다리시는 분이 아닙니다. 앞서 요나를 통해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에 회개를 외쳐 그들의 팽창을 멈추게 하신 것은, 멸망의 늪에 빠진 북이스라엘에게 돌아올 시간을 벌어주신 하나님의 치밀하고 놀라운 구원의 섭리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돌아오라 하실 때는 이미 회복의 자리를 완벽하게 만들어 두시고 부르신다는 사실을 결코 놓쳐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이 절호의 기회를 자신들의 부를 축적하는 이기적인 시간으로 악용했습니다. 기도는 다급할 때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준비된 하나님의 뜻을 묻고 깨달아 내 삶의 방향을 맞추는 거룩한 자리입니다. 이를 외면한 채 신실하신 하나님께 정함이 없이 행동하는 이들의 배신은, 철저히 세속화된 인간의 어리석음을 보여줍니다.
살펴본 것처럼 이 말씀은 7절 "그는 상인이라 손에 거짓 저울을 가지고 속이기를 좋아하도다"라며 스스로 부자가 되었다고 착각하는 이들의 교만한 민낯을 정확히 짚어냅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영적 착각을 깨뜨리기 위해 거짓된 인생의 대명사인 야곱을 소환하십니다. 태중에서부터 형의 발뒤꿈치를 잡고 속임수를 일삼던 비열한 야곱이지만, 결국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꺾어지는 놀라운 은혜의 개입을 실제화하여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반면 한때 마하나임의 은혜가 머물렀던 길르앗은 피 발자국이 낭자한 악의 고을이 되었고, 언약이 갱신되던 길갈은 바알의 우상이 판치는 무가치한 돌무더기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이방인보다 더 타락하여 멸망의 길을 자진해서 걸어가는 북이스라엘의 비참한 폭주와, 비천한 상태에서 꼬꾸라져 은혜를 입은 야곱의 삶을 극명하게 대조하며, 내 힘이 빠지고 철저히 꼬꾸라지는 그 순간이 가장 위대한 은혜의 시작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 힘들고 아플 때만 지푸라기 잡듯 교회를 찾고, 상황이 나아지면 바쁘다는 핑계로 다시 세상의 헛된 동풍을 좇아가는 이중적인 일상을 뼈아프게 돌아보게 합니다. 세상의 이치와 하나님의 자녀가 걸어가야 할 길은 반드시 충돌하게 되어 있습니다. 내 삶에 이러한 영적인 충돌이 없다면, 즉시 멈춰 서서 향하고 있는 방향을 점검해야 합니다. 은혜는 내가 이룬 성공과 부를 뽐내며 스스로를 속이는 교만의 자리가 아니라, 나의 바닥을 진실하게 인정하고 타인의 손을 내밀어 잡는 겸손의 자리에서 시작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이웃과 나누며,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신 예수님의 고귀한 자기희생을 삶의 궁극적인 방향으로 설정해야만 합니다.
우리는 결단해야 합니다. 마지막 기회라며 돌아오라는 하나님의 경고는, 사실 우리의 연약함을 다 아시면서도 기어이 용서하시고 품어주시겠다는 십자가 사랑의 애절한 표현입니다. 당장의 위기만 모면하려는 얄팍하고 비겁한 변명을 버리고, 우리 각자가 생명줄처럼 쥐고 있는 현대판 앗수르와 이집트에서 과감히 시선을 거두어야 합니다. 이미 우리를 살리시려고 가장 안전한 자리를 마련해 두시고 두 팔 벌려 부르시는 아버지의 애타는 음성 앞에, 아무런 핑계 없이 나아가야 합니다. "주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제 두 손을 잡아 주옵소서"라고 아이가 부모의 품을 찾듯 철저히 엎드리며, 과거의 은혜를 기억하고 옳은 길로 돌이키는 진정한 회개의 삶을 살아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