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촌 양의문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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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묵상

A4_한장으로 시편 142편

시편 142편 / 동굴과 같은 현실 속에서

시편에는 ‘마스길’이라는 제목을 단 시편들이 있다. 특정 사건을 염두해 두고 읽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 사건’으로 인한 고통스러운 경험이 후대에 교훈과 지혜를 주기 위한 의도를 가지고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다윗이 굴에 있을 때’라는 표제가 이를 뒷받침한다. 사울을 피해 아둘람 굴로, 엔게디 동굴로 도망간 사건이다. 우리도 이러저러한 일로 도망가고 싶을 때가 있다. 그리고 동굴처럼 자신을 숨기고 싶을 때도 있다.

포로기 이후 기록된 성전을 향한 시편과 다윗의 시편을 왜 불렀을까? 마치 우리가 윤동주의 서시를 다시 부르는 건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한 점 부끄럼 없기를...’ 바라는 삶 때문만은 아니다. 주권을 빼앗기 고통스러운 현실 속에서 무력감을 느낀, 친일에 타협하지 않는 순수한 양심이야말로 이 시의 진 면목이듯, 다윗과 동굴 그리고 ‘하나님’을 놓쳐서는 안 된다. 앞서 우리의 삶에도 도망, 동굴, 피난과 같은 상황에서 범인들은 ‘하나님’이 없다. 생각을 정리하고 새로운 결단의 시간이지만 신자에게는 ‘하나님’과의 시간 속에서 나를 발견한다.

짧은 시는 그만큼 간절하고 급한 상황임을 추측할 수 있다. 어쩌면 긴 시간의 기도는 그 자체로 평화의 시간을 반증한다. 그러나 위급한 시간 순서는 없다. ‘들어주세요, 주님’부터 시작한다. ‘내가 소리 내어 여호와께 부르짖으며’라는 기도자의 간절한 상황이다. 주변을 돌아볼 시간이 없다. 주님도 히브리서 5:7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바울도 디모데에게 편지를 하면서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라고(딤후4:16-17) 동굴과 같은 상황에서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에게 힘을 주’셨다고 고백한다. 신자의 삶이 ‘동굴’과 같은 비유일 수 있으나 생각해 보자. 동굴 속에 있는 것을 아는 것과 모르는 차이를 말이다. 세상을 의지하며 자신의 능력을 의지하기 때문에 그에게 맞게 능력도 발휘하고 재력도 있으니, 그들은 ‘동굴’의 존재를 알 수 없다. 가려진 것이다. 계시록에 ‘나는 부자요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알지 못하는도다’, 고린도 교회에도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라고 했고, 예수께서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다’라는 말씀은 우리의 상황을 정확하게 지적한다.

그러나 구원의 빛으로 진짜를 보게 되었다. 마치 요한 9장의 눈뜬 자처럼 말이다. 그래서 신자는 동굴과 같은 암울한 현실계를 보기 때문에 고통이나 고난을 직시하게 된다. 그때 눈을 돌리는 어리석음도 있겠지만 다윗처럼 ‘내가 소리 내어’ 주님을 찾는 마스길 즉 교훈과 지혜가 그 어느 때보다 포로에서 돌아와 진짜 하나님의 나라를 꿈꾸는 자들에게 필요하다. 우리 사는 세상이 ‘내 원통함’(2)을 해결하지 않는 부조리한 세상임을 기도자는 알고 그렇기에 ‘그의 앞에 진술’하는 고발자의 기도이다.

그래서 기도는 ‘주님 세상이 저를 이렇게 힘들게 해야’라고 탄식하며 기도하게 한다. 그래야 3절 ‘내 영이 내 속에서 상할 때’를 우리 주님께서 ‘아신다’라는 것을 깨닫는다. 말할 때 즉 기도할 때 일어나는 변화이며 동굴이라는 현실보다 더 중요한 교훈은 동굴과 같은 현실에서 ‘소리내어, 부르짖고, 간구하고, 토로하며, 진술하는’ 기도해야 한다.

우둑한 곳 동굴, 그래서 4절 나를 아는 이도 없는 곳이자 나 자신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현실에 혼자 있음이 아니라 나도 없음같이 느껴진다. 나 자신도 발견되지 못하는 곳에 그렇게 의심이 드는 곳에 어느 유명한 철학자의 말처럼 생각하는 나는 있는 것이고 생각하는 나의 존재는 부인될 수 없다는 것처럼 기도할 때야 비로소 신자의 있음이 경험되는 것이다. 그래서 부르짖음을 들어달라고 내가 있음을 동굴 깊은 현실에서 깨달았다고 교훈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진짜 비극은 동굴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동굴에 갇혀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썩어질 세상의 것들로 동굴 벽을 화려하게 장식하며 살려는 착각이다. 그래서 각자의 동굴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시험하는 장소이다. 동굴 같은 세상에 있으면서도 동굴을 부인하는 자들의 말을 주의하라. 그들이야말로 우리를 동굴로 끌고 가는 자들이다. 오히려 동굴을 피하지 말고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시는 은혜임을 깨닫고,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며,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고후1:8-9, 시119:71, 벧전4:12-13)는 진짜 값진 동굴을 경험하자.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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