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 하나님께서 호세아서를 통해 우리에게 알기 원하시는 가장 본질적인 질문은 어떻게 이렇게까지 사랑할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 세상의 흔한 사랑과 달리, 하나님의 사랑은 상대방의 변하지 않는 비참한 상태와 배신의 아픔 속에서도 결코 멈추지 않고 계속됩니다 . 흥미롭게도 호세아서 1장부터 3장까지는 인간 호세아와 고멜의 감정을 철저히 배제함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감정적 몰입을 넘어 신뢰와 진실이라는 관계의 본질에 직면하게 만듭니다 . 이 배제와 생략의 서사는 결국 우리를 하나님은 어떠하신 분이신가라는 질문으로 직접 연결합니다 .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참된 관계의 회복은 단순히 외적인 조건의 변화가 아닙니다 . 그것은 서로에게 공의를 행하고 인애를 사랑하며 겸손히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인격적 관계의 회복입니다 . 그러나 이스라엘은 안아서 걸음마를 가르치고 팔로 안아 길러주신 부모와 같은 하나님의 구체적인 사랑을 받았음에도, 끝내 아버지의 품을 떠나 세상의 방식대로 살아가며 관계가 깨어진 상태에 머물렀습니다 . 이처럼 죄로 인해 나라가 멸망을 앞둔 위급한 상황 속에서도 일어날 기척조차 없는 자녀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진퇴양난의 깊은 아픔에 처하게 됩니다 . 바로 이 지점에서 죄를 벌해야 하는 하나님의 공의와, 자녀를 끝내 포기하지 못하고 끌어안으려는 사랑이 격렬하게 충돌합니다 . 이 거룩한 충돌의 중심에서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심장을 대변하는 두 가지 히브리어 단어를 깊이 묵상하게 됩니다 . 먼저 돌이키어로 번역된 하파크는 원래 소돔과 고모라처럼 대상을 산산조각 내고 뒤집어엎어 파괴한다는 무서운 심판의 단어입니다 . 하지만 하나님은 자녀를 엎어 멸하는 대신,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뒤집혔다 하시며 진노의 대상을 자기 자신으로 돌리셨습니다 . 두 번째로 불붙듯 하다는 의미의 카마르는 요셉이 아우를 보고 마음이 복받쳐 울었던 것처럼 애간장이 타들어 가고 억장이 무너져 내리는 부모의 깊은 감정적 상태를 뜻합니다 . 하나님의 깊은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하파크와 카마르의 격동은 마침내 맹렬한 진노를 붙잡고 내가 다시는 에브라임을 멸하지 않겠다는 신실한 사랑의 약속을 낳습니다 . 이 크고 기이한 사랑의 최종 결정판이 바로 우리에게 오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 사람은 화가 나면 밥상을 엎어버리지만, 하나님은 도리어 십자가에서 당신 자신의 몸을 뒤집어 엎어 찢으심으로 기어이 우리를 살려내셨습니다 . 이 애끓는 사랑을 마주한 우리는 이제 배신과 절망의 자리에서 돌이켜, 나를 놓지 않으시는 아버지의 긍휼한 품으로 온전히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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